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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0110 - 식민제국 일본 여행기 5일차 - 오키나와 중북부_모토부 반도

by hiStoryshun 2026. 1. 11.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이전과는 달리 오늘 아침에는 비 온 흔적은 없었다.
나고시에서 숙소를 잡았던 건 오늘 5일차는 모토부 반도 지역을 돌아보기 위한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단 하나 아쉬웠던건, 나고 시에 오리온 맥주 공장이 있는데 여기는 가볼 수 없는 장소(운전이 문제다 운전이 ㅜ)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는 점.
5일차의 기본 일정은 모토부 반도 일대였다. 75년 오키나와 해양 박람장(츄라우미 수족관 - 오키짱극장 - 오키나와 향토마을 - 해양문화관 플라네타리움) - 비세후쿠길 - 나키진 구스쿠 - 일본국립 요양소 애락원(나병자 생활공간) 으로 정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 일정이지만, 다음날 렌터카 아침 반납을 위해 숙소를 공항 근처로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일본에 와 있는 동기를 만나는 시간을 비워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침에 이온몰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오늘의 커피 벤티 사이즈로 시작했다. 8시 15분정도였는데, 그 시점에 이미 가게에 사람들이 여럿 들어와있더라. 이온몰 위치가 보통 시 외곽인걸 생각하면, 아무리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다들 삶의 시작이 빠르구나 싶더라.

나고 시 이온 몰의 스타벅스. 행로 중간에 위치하기에 아침 스벅을 노리고 찾았다.


일본에서의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길을 살짝 헤매기는 했지만 츄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 해양박람회 기념공원에 도착했다. 나고시에서 25분 안쪽으로의 거리였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1월은 일본에서 학기중이라 그런지 비수기라 그런가 싶더라. 기념공원에 도착해서 알게된 것이지만, 오키나와 박람회가 75년에 개최되었고, 이는 미국에게서 류큐 지역을 오키나와로 반환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컸다고.

츄라우미 수족관 입구. 한자에서도 볼 수 있듯 ’아름다운 바다’라는 의미이다. 실제로도 츄라우미 앞 바다는 매우 아름답게 빛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수족관 개관 50년이 넘어서인지 현재의 규모 자체는 ‘아 크구나~’ 정도. 롯데타워 아쿠아리움이 아무래도 대형 수조가 더 커보이기도 하고.
수족관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오키짱극장의 돌고래 쇼. 실제로도 꽤 재미있다. 뒤에 보이는 섬은 이에지마.

수족관은 설명이 나름 잘 되어있긴 하지만, 생명체 관련 일본어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 자세히 보지는 않게 되더라. ‘와 이런 것도 있네~’, ’오 상어 귀엽다~‘ 정도 느낌은 받았다. 아무래도 12월에 일로 롯데타워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고 츄라우미 수족관을 보게되니 지난 시간이 시간이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기도 했고.
수족관과 오키짱극장 공연을 보고 나서 오키나와 향토 마을을 둘러봤다. 주거지를 통해 류큐 지역 사람들의 삶을 추론해볼 수 있기도 했고, 전날 나카구스쿠 성의 고사마루의 중국식 이름(모국현)도 있는 것도 잘 설명해 두었더라. 일본의 우지가바네 같은 느낌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이름’이 갖는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는 누가 잘 정리해주지 않으려나 생각은 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집은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고.
마을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집의 모습. 그나마도 조선 후기 정도 되는 시점의 모습이다.

오키나와 향토 마을로 조성된 공간을 둘러보고 플라네타리움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날 따라 러너들이 많았는데 뭔가 보물찾기 행사라도 하는 듯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해양문화관-플라네타리움에서는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본래 박람회 당시 기업의 전시관이었던 장소를 해양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로 동남아와 태평양 지역의 섬 생활에서 활용된 ‘배‘를 볼 수 있었다.
해양기념공원에 대한 대략의 설명도 알 수 있다.
나름 꽃 전시를 함께 하고 있어서, 와서 볼 것들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전에 와서 정오까지 보면 무난한 장소.

해양기념공원을 나와 목표로 한 곳은 비세후쿠길. 정확히는 비세자키의 후쿠기(福木, 말그대로 복나무라고 한다)를 심은 길이다. 한국이라면 메타세콰이어 길 같이 조성해 둔 것 같아 가보았다. 그러나 웬걸, 철저한 상업공간이라고 해야할지 길은 좁아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기 어렵고 길 끝의 해변의 주차장은 사유지라 500엔을 받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굳이 갈 이유가 없었기에 휙 지나만 오고 패스.

나키진 구스쿠 바로 아래의 식당에서 한끼 해결하고 나키진 구스쿠로 올라갔다. 마찬가지로 세계유산 중 하나인데, 17세기까지 사용된 성곽이라 한다. 이 지역이 모토부 반도(本部半島)인데, 해안가를 중심으로 대부분을 전망하기 괜찮은 위치에 나키진 지역의 유력자가 구스쿠를 만들고 거점으로 활용한 듯 했다. 류큐 왕국 시기에도 나름 중앙 관리가 지역을 통제하는 공간으로 쭉 사용되었으나 사쓰마 번 침략 시 파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일본식 성곽 배치를 따르고 있어서 엄청 특이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나름 일본의 명성(名城) 중 하나라고 한다. 전망을 보면 그럴만도 하고.

구스쿠 정면의 전경.
제2성곽쪽에서 바라본 아래 전경. 산의 굴곡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넓게 조성된 감이 있다. 여기도 보은 삼년산성 느낌을 받았다.
해안 방향의 전경. 오키나와의 바다는 그야말로 푸르다.

모토부 반도의 나키진 구스쿠가 슈리 성 - 나고 시 기준으로 교통이 편리하지는 않아 보였고, 산 위에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에 위치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왜냐면 모토부 반도 전체로 보면 구스쿠 위치가 지리적으로 중심지가 되기는 어려워보였다. 실제로 지금도 나키진 중심지는 동부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물론 고우리 섬으로 이어지는 관광까지 생각한 중심지 성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나키진 구스쿠를 조망하고 나오면 나키진촌역사문화센터가 있어서 관람했다. 나름 나키진 촌의 역사를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공간이었는데,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나오는 지역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키나와 다른 지역이 그러하듯 한반도의 이두향찰 처럼 원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점차 지역명이 변화한 사례 중 하나라는 점도 관심이 가는 지점이기도 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구스쿠 입장료가 1,000엔인 것.. 이건 솔직히 너무했다 싶은 금액이었는데, 당장 나카구스쿠만 해도 500엔이고 가보진 못했지만 가츠렌구스쿠도 600엔 입장료라는 것에 충격.

나키진 구스쿠를 나와서는 야가지섬으로 향했다. 모토부 반도 동쪽에 있는 섬인데, 보통은 전망대가 있는 고우리 섬으로 지나가는 중간 과정으로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섬이라는 특징이 있어선지 야가지 섬 북동부는 나병(한센병)환자들의 마을이 존재한다. 아이라쿠엔(애락원)이라고 하는데, 현재 국립요양소로 운영중에 있다. 장소 위치를 알고는 매우 쉽게 찾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근처에 다다르니 일본 치고는 매우 강력한 문구로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어서 내가 잘못 들어왔나 했다.

이게 우리나라 같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본이라 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원래 목적이 전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방문하는 상황이었기에 잠깐 흠칫한 후 바로 들어가긴 했다. 그리고 역시, 이 도로는 이어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맞았다.

오키나와 애락원 교류회관. 공식적으로도 박물관은 아니다. 교류회관 내에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내부 촬영은 허락되지 않아 자료를 남기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다만 기억을 되짚어 정리해보면… 한센병의 특징 - 경과 - 일본에서의 나병(한센병) 인식 - 근대에 접어들어서의 나병 대응 - 오키나와 나병 환자의 대부 아오키 케이사이(도쿠시마현 출신)의 활동과 애락원 설립 - 애락원을 둘러싼 오키나와 내의 갈등 - 애락원 내 사람들의 모습들(이 좀 많이 전시되어 있다) -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등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의 역사들 중 한센병 환자들을 다룬 주제는 꽤 연구 내용이 알려져 왔기에 대략 한국과 일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오키나와는 그 형태가 좀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국가로부터 격리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아오키 케이사이의 경우 본인이 환자여서였는지 한센병 환자들이 일방적으로 격리당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위한 토지를 구입하고 자생역량을 높이려고 했다는 점이 먼저 눈여겨볼 지점이었다. 다음으로 한센병 환자들은 주로 종교에 귀의한 경우가 많았지만 40년대 일본의 천황 이데올로기 기반의 강제노동력 동원에도 최선을 다해 협력하려 했다는 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후 오키나와가 미군정하 류큐국이다 보니 다른 아시아 반공국가와 달리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측면이 있다보니 한센병 감염자 중에도 시설을 나와서 생활할 수 있었기에 다른 지역과 달리 완전히 외부와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본 시설인 오키나와 애락원은 나름 ‘사람 사는 공간’이었고 자신들을 둘러싼 외부의 불편한 시선과 싸워가며 동등한 오키나와 주민으로서 대우받고자 하는 노력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것 등이 그러하다.

상기한 오키나와 한센병 환자들의 대부 아오키 케이사이 동상. 돌아가신지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이름없는 아이들을 위한 추념비. 한센병 환자들은 (남성은)불임수술을 당했는데, 여성은 임신시 낙태시술을 당했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을 기리는 비석.
애락원에서 보이는 고우리섬. 관광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애락원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렌트카 반납을 위해 나하공항까지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대략 16시 30분정도였기에, 만국공통 러시아워를 뚫고 가야하다보니 60km를 1시간 40분 걸려 가야했다. 그러다 마침 오키나와에 여행온 대학 동기와 연락이 닿았다. 마침 부부가 아메리카 빌리지에 있다고 하더라. 애락원에선 1시간 정도 거리. 기다리겠다고 하기에 만나기로 했다. 덕분에 전혀 여행 코스로 생각지도 않아 가데나 기지 지나갈 때도 경로에도 없던 아메리카 빌리지도 찾게 되었다.

원래 가려 했던 식당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기에 방문한 88스테이크 사진으로 아메리카 빌리지 사진을 대체해본다.

아메리카빌리지는 돌아다니는 사람의 1/3이 한국인인 것 같았다. 류보 백화점 앞에서 외엔 들을 일 없던 한국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긴 했다. 여행 일정 내내 들을 일 없던 한국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도 있고. 그리고 꽤나, 불야성이었다. 동기도 그랬고 나도 그랬지만 쇼핑이 아니면 먼저 찾아올 일은 역시 없겠구나 싶은 느낌의 장소.
그렇게 저녁 먹고 헤어져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러시 아워를 지나서였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것은 덤.

이제 오키나와 일정도 거의 끝을 향해 간다. 내일은 렌트카 반납 후 국제거리 근처 중심으로 돌아볼 예정이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에서 흥미로운 것들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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