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5 - 식민제국 일본 여행기 10일차 - 타이완 타이난
타이난의 2일차다. 타이완 와서 다들 시도한다는 아침 식당 찾아가기는 안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중국어 로컬 식당 이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하며 뭘 많이 먹고있지도 않고.
그래도 아침은 전날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빵으로 시작한다. 며칠 여행하며 느낀 것이지만, 아침이 부실하면 12시쯤 관람할 힘이 없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그저 의무감에 보는 것 같은 기분만 받을 뿐.. 허헣.
오늘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국립대만역사박물관 - 타이난시립박물관 - 타이난시립미술관
생각보다 짧은데,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의 위치가 시 외곽이라 이동시간을 꽤 잡아먹더라. 그래서 여유있게 본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짰다. 치메이미술관 갈 것 아니면 타이난도 시내에서 돌아다니기는 제한적이라..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은 대만의 역사를 누구의 시점이 아니라 다양성의 시점에서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에 넣었는데, 자전거로 32분, 버스로 58분이 걸리는(종점까지 가야하는) 괴랄한 장소였다. 뭐, 이지카드 충전도 많이 해 뒀으니 버스로 즐겨보자 하고 5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종점까지 가야하니 뒤쪽에 자리 앉아 가야지 생각을 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두 정거장 쯤 지났을까, 어느 할아버지께서 탑승하고 내 옆에 앉으셨는데, 으악 소리가 났다. 온몸에서 헤비스모커의 냄새가 풍기는데, 과장 조금 보태서 숨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ㅠㅠ. 할아버지와 20분 정도 같이 버스를 타고 갔고,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내리기 전까지 그저 말도 못하고 먼산만 보며 버스 탑승을 후회하며 있었다.
그런 사소한 사건을 거쳐 종점인 헤슌(화순, 和順)정류장에 내려 국립대만역사박물관에 걸어갔다. 평일이라 근처에 사람들도 없고, 반대편에는 거대한 야구장 하나가 보이는 휑한 벌판이었다.




들어와서 천천히 역사 관련 내용들을 훑어봐야지 했는데, 웬걸 초등학교 수학여행 경로인건지 건물 가득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로 온 건물이 가득했다. 애들은 나름 설명을 듣고 있겠지만 활동지만 하고 지나치는 아이들, 정신없이 자기들끼리 돌아다니는 아이들, 이 와중에 도슨트 역할을 하는 것 같은 20대 청년들의 목소리 등 시장바닥이 여기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 자체는 매우 재밌었다. 한개 층을 사용해서 타이완의 역사를 모두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를 감안해서 본다면 충분히 타이완의 역사 전체를 다루는 데엔 성공했다고 보인다. 역사란 아무래도 기록의 결과물이고 현재적 관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보니, ‘중국’의 타이완으로서의 접근이 시작점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타이완이 ’타이완‘다워진 시점은 일제강점기를 제외할 수 없기도 하고, 실제로 그와 관련한 내용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오히려 현대 타이완의 내용이랑 비교해서 너무 많지 않나 느낄 정도로 말이다. 228 사건만 하더라도 할 말이 많을텐데, 정작 이와 관련해선 매우 소략하다.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전시였고, 특별전 또한 ’여성의 이동‘과 관련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잘 구성해 두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장소이긴 하다.
먼저 너무 멀다. 버스로 1시간은 가야했다. 심지어 이놈의 버스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고 배차 간격도 1시간 정도 된다. 다음으로 중국 그 중에서도 타이완의 역사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중국어를 좀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영어랑 대충 눈대중으로 끼워맞추기를 하다보면 전시 내용의 흐름을 알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나조차도 영어 중심으로 알고 있는 타이완 역사와 맞춰가며 전시를 보았지만 나름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 볼 만 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을 나중에 기억하고픈 소재들이 매우 적다. 한국만 하더라도 MUD:S와 같이 박물관 문화재단에서 만드는 굿즈들을 통해 박물관을 다시 기억하고싶은 기념소재들이 이쁘게 나오지만,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은 너무 평범했다. 정확히는 타이완 전체에 대한 기념품에 가깝고 박물관이나 타이난을 특정해서 기억할만한 기념품은 없다시피 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은 너무 멀다. 전시 관람을 끝나고 나니 12시 30분. 돌아가는 버스는 25분 뒤에나 도착한다. 결국 나는 다시 또 선택을 하게 된다. ‘유바이크 타고 8km 되는 거리, 가보자 그냥’ 이라는 선택을 말이다. 다행히도(?!?)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의 유바이크 주차장에는 전기자전거도 한 대 있었고, 이를 빌려 다음 일정인 타이난시립박물관 방향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식사를 하고, 시립박물관을 향하였는데 뜬금없이 연평군왕 사당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타이난은 구 대만부청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정성공(명 연평군왕으로 봉해졌기 때문)의 흔적이 남아있다.



연평군왕사당에는 곳곳에 정성공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적어두고 있다. 읽다보면 이 사람도 꽤나 입지전적인 인물임을 실감하게 되긴 한다. 난세에 이름을 알렸고, 타이완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사망한 것까지 이야기도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싶게. 덕분에 정성공에 대해 다시금 공부하게 되는 좋은 장소였다.
연평군왕사당을 나오니 바로 옆에 시립박물관이 있었다. 들어가서 뭘 볼 수 있을까 기대도 했지만, 건물 규모가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구글 지도 리뷰에서도 별 것 없다는 리뷰가 꽤 있어 걱정했는데, 입장료도 NT$100을 내야하는 데 카드 결제는 또 안되는 상황. 왠지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그냥 나와버렸다. 그런데 웬걸, 바로 그 앞은 타이난 교구 주교좌성당이 있는 것이 아닌가. 냉큼 들어가서 구경했다.



무사한 여행 마무리를 기도하며 대남부청 영남문 방향으로 향했다. 뭐가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구 성문이니 우리로 치면 서울 남대문이나 화성행궁 장안문 같은 건축물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을 굳히게 된다. 타이완은 여름 고온 다습에 올 곳은 아니구나.. 타이난의 최고 온도가 26도를 찍다 보니,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더웠다. 그런데 여름엔 다습까지.. 아우 진짜 견디기 힘들겠다 싶더라.

수리공사중인 곳을 들어가 볼 수는 없고, 타이난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건물은 두개 동으로 나뉘어있고, 처음 찾은 2동은 건물이 이쁘다는 후기들이 있으며 실제로 전시도 나름 유의미하겠다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 내용이라 간단히 보고 같은 표로 볼 수 있는, 그리고 걸어서 5분 거리의 1동으로 찾아갔다.




시립 미술관 1관 안에서는 도교 관련 전시를 하고 있는데, 나름 도교 관련 인물들에 대해 건너들은 것이 있다보니 흥미롭게 보긴 했다. 그리고 이걸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뭐랄까 여행하면서 내가 너무 길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아마도 중국어가 안되다 보니 거기서 오는 피로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옆에 생각을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싶으면서도, 그랬으면 이렇게 여행오진 않았을테니 또 모르겠다는 생각 등등,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
좀 더 걷는 길에 스타벅스가 있기에 가봤다. 타이완은 워낙 길거리의 차 음료수 가게들이 저렴해서 스타벅스는 매우 비싼 매장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이를 감수하고 찾은 이유는 아래 사진의 ‘베이따이’를 얻기 위해 :)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쉰다. 내일은 타이중을 향한다. 타이중도 원래 2박 3일을 계획했지만, 타이베이에서 꼭 보아야 하는, 이전에 타이베이에 왔을 때 휴무일이라 못가본 박물관 하나를 가기 위해 타이중은 1박 1일(사실상 중간 숙소 정도의 느낌이다)을 계획 중이다. 대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주 무대였던 창화 시를 둘러보기로.
참 좋아하는 영화고 4번인 가 다시 보았던 영화인데, 그 무대를 드디어 찾는다. 아마 영화처럼 자전거로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 푹 쉬고 내일을 기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