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8 - 식민제국 일본 여행기 3일차 - 오키나와 남부
오늘도 역시나, 잠을 못잤다.
2일차에 워낙 많이 걸었던 탓에 몸이 회복을 위해 엔돌핀이 계속 돌았던 때문일 수도 있고,
(결국 에어팟 노이즈 캔슬링을 쓰게 만든) 여러 사람들의 코골이 때문일 수도 있고. 아마 모두 작용했으리라.
그래도, 에어팟 끼고 자니 잘만은 했다. 하지만 외풍은 어쩔수 없더라. 환기를 위해 송풍기가 틀어져 있었고, 바람이 계속 외풍마냥 침대 근처를 돌아다녔다.
긴바지와 긴팔셔츠를 입었으면 좀 나았겠지만, 애초에 잠옷은 반팔 반바지의 운동복을 챙겨온 이상 망했다고밖에..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하는 샤워 덕분에 피로는 나름 잘 풀렸다.
오늘 3일차는 렌터카의 시작. 나하버스터미널에서 예약해 둔 오달렌터카(오키나와달인) 장소로 가면 되었다.
금액만 놓고 보면 72시간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어 대응이 된다는 것이 가장 컸다.
내가 일본어를 알아듣고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도 있으니까라는 생각이었다.
(잘 알아보면 영어 대응 되는 렌터카 업체들도 많고, 해당 업체들을 잘 알아보면 나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도 함!)

여러가지 설명을 충분히 듣고, 한국과 반대방향으로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하며 철저한 방어 운전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몰던 차가 워낙 편한 차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운전은 긴장의 연속.. (실제로 한번 큰 실수를 했다 ㅜ)
그나마 다행인건, 일본은 꽤나 운전자들의 방어 운전이 익숙한 나라라는 것..! 이를 믿고 운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3일차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평화창조의 숲 공원 -> 존 만지로 기념비 ->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 점심 -> 세이화 우타키 -> 테다 우카 -> 사키마 미술관 -> 모텔 입실 -> 카카즈 전망대
운전하면서 느낀거지만, 생각보다 오키나와가 동서로 넓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남부를 돌아 중부로 올라가는 코스를 짰는데, 엄청 돌아다녔다는 느낌이 없어서.
먼저 가게된 평화 창조의 숲 공원은 운전 연습을 겸해서 간 곳이기도 하다.


평화창조공원은 몇몇 구스쿠(산성) 유적도 있지만 여기부터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은 계속 희생자들의 추념비가 여기저기 세워져있는데, 그 중 일부가 있다.
굳이 내가 일본 47개 각 현의 추념비를 볼 필요는 없다보니,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향해 갔다. 이쪽으로 가는 길에, 존 만지로 기념동상이 있다.
존 만지로는 일본 개항기, 평범한 어민으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되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통역을 담당하게 된 인물이다. 돌아올 때 당시엔 일본 에도막부 시기였고, 막부의 쇄국 정책이 이어졌기에 대신 류큐 왕국으로 틀어서 일본으로 돌아가려 했고 그 때 처음 발딛은 곳에 그의 동상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은 사실상 서퍼들과 가족 입수객들로 가득. 실망을 안고 평화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전날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아니면 운전하느라 오만가지 긴장으로 체력을 소모하고 있어서였을까. 가는 길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도착해서는 3일차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공이 전공이라서도 있겠지만, 공간과 장소에서 느낀 감정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본에서 보통은 조총련 쪽이 시작한 한민족 관련 활동들이 꽤 있는데, 여긴 아예 ‘한국’이 박혀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최근 1950년대 한국외교사 논문들에서도 이승만 정부가 당시 류큐(현 오키나와현) 지역을 자유민주 동맹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들을 밝혀내고 있는데, 그 연장선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이어서 옆에 있는 기념당의 전시관에 갔다. 제주가 4.3, 타이베이가 2.28 중심이라면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듯 하다. 일본군의 학살, 미군의 폭격 모두를 다 담아내고 있는 전시였는데,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혹한 동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난징대학살 전시는 사실만 그대로 뒀는데도 할말을 잃는다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남은 상흔이 쉽게 사라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상설전시를 다 보고 내려오면 바다쪽을 향해 기념전시물들이 있다. 물론 사망자의 절대 다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인들도 지역별로 구분이 되고 타이완 한반도 미국 등 모든 사망자들을 기리는 장소가 펼쳐진다.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지, 그냥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나를 새롭게 만들어준 장소. 기념공원을 찾아올 사람이라면 꼭 돌아다녀보기를 권한다.
장소를 지나면 일본 각 현에서 위령비를 세운 장소가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굳이 찾아올라가보긴 했지만, 자신이 해당 지역과 연관이 있어서 궁금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봐야하는 생각은 든다. 평화의 비 있는 장소들과는 달리 좀 정신없어보이기도 하고.
나오니 도저히 배고파서 뭘 할 수 없겠더라. 급하게 식당을 찾아 갔는데, 마침 일본가정식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상호명은 니라이카나이 식당.

위치가 일본 육상자위대 기지 바로 앞이라, 아마 군인들의 소위 함바집 아녔을까 싶은 생각은 들더라. 가격에 맛도 무난해서 가성비 이상으로 최고였다.
먹고 나서 알게된 사실인데, 세이화 우타키로 가는 길이 니라이카나이 다리였고, 부산 광안리 대교 같은 느낌인데, (초행)운전자 입장에선 살짝 무섭기도 한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근데, 너무 절경이더라. 운전하느라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세이화 우타키에 도착해보니 바로 들어갈 수는 없고, 언덕 아래의 평지 휴게소에 차를 두고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올라가야 했다. 한국의 사찰 공간의 일주문을 지나 본당에 올라가듯 조금 올라가니 세이화 우타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유산이고, 류큐인들의 영적 측면에서 중요한 장소이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거나 기도를 한 돌들을 보면 사람들이 기도할 법한 모양이기도 했고.


그러나 내가 뭔가를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역시 인간은 자신과 관련있는 것 부터 흥미를 느끼는 법이다 보니 보기는 보는데 아쉽.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신성시 여겨진 장소인데도 나에게 더 좋았던 곳은 세이화 우타키를 나와 찾은 테다 우카.


테다 우카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해변 산책로에 가까울 정도. 나 외엔 없는 길이었는데 왠지 여름 노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쪽엔 바다, 한쪽엔 방풍용 갈대숲과 열대 식물들이 포근함을 주기도 했고.
여기까지 오니 시간이 벌써 3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오늘 숙소가 있는 후텐마 기지까지는 1시간여 걸리는데, 다른 곳을 볼 여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후텐마 기지 근처의 사키마 미술관은 18시에 닫기 때문에 그 전에 봐야했기 때문이다. 내일로 일정을 미루면, 그만큼 내일은 뭘 더 못보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50여분을 지나 사키마 미술관에 도착했다.
사키마 미술관은 오키나와 전투도를 그린 마루키 이리&토시 부부의 작품 소장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것만 있는 건 아닌 듯 한데 전쟁의 참상을 있는그대로의 그림으로 잘 담아내기도 했고. 아쉽게도 내부 작품 촬영은 금지.



TMI이지만 사키마 미술관을 세운 분의 장남이 2026년 1월 현재 미술관이 위치한 기노완시 시장 사키마 아츠시 씨라고.
미술관 관람 후 숙소 도착하여 간단히 짐을 풀었다. 풀자마자 마침 시간이 남아서, 같이 근무하는 지리 선생님께 들은 미나토가와 지역의 구 미군관사지역의 카페를 찾아가봤다. 17시를 넘어가는 시점에 찾아가서인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겠다 싶은 감성이겠다 싶더라. 대전이라면 소제동 같은.


그리고 다시금 후텐마 기지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오늘의 계획을 세울 때엔 깜박 했지만, 카카즈 공원 전망대를 가야겠다고 이전에 계획세울 때 생각해 뒀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카카즈 공원 전망대에선 후텐마 기지가 대놓고 잘보인다. 사키마 미술관 옥상보다도 더.



전망대 옆에는 시마네현 사람들이 45년 이 고지에서 미군에 맞서 싸우다 죽은 것을 추념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 한편으로 청구지탑이라고 한민족전몰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근데 왜 여기였을까 그냥 혼자 추론을 해본 것인데, 45년 시점이면 조선인 징병도 꽤 이루어졌고, 시마네 현은 도일조선인들이 꽤 많이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징병 때 시마네현 소속의 부대에 재일조선인들이 징병으로 많이 가게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기에 시마네현 위령비와 함께 청구지탑이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은 해봤다. 물론 아닐 수 있지만 나름의 추론.

하루가 길었다.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멀리 가고, 중간에 많은 것들을 보아야 하는 일정 계획이다. 무사히 내일도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길.